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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장로 노이로제

마라도나김 2011. 9. 5. 11:53

 

장로 노이로제

                                                               


안수집사인 김범인은 교회가 두 달 후에 장로를 뽑겠다는 광고를 하자 갑자기 가슴이 뛰면서 머리가 아프고 현기증이 왔다. 이번에는 장로를 선출하는 방법을 달리 해서 당회와 안수집사회 전원이 공천 위원이 되어 장로 후보를 2배수로 공천하고 그 중에서 공동의회를 통해 7 사람만 장로를 뽑겠다는 광고였다. 투표에 앞서 공천위원회가 모였다. 공천을 하려면 어떤 원칙이 있어야 한다. 예수교 장로회 헌법에 의하면 장로는 “상당한 식견과 능력이 있고 무흠 입교인으로 7년을 경과하고 30세 이상이 된 자로서 디모데 전서 3장 1-7절에 해당한 자라야 한다.”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조항으로는 사람을 선별하는데 너무 모호하다. 디모데전서 3장 1-7절만 해도 그렇다. 선한 일을 사모하는 자, 책망할 것이 없으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여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는 사람. ……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이것이 어떻게 구체적인 공천기준이 되겠는가? 그래서 공천 위원회에서는 이 문제로 왈가왈부 하느라 많은 시간을 낭비하였다. 어떤 이는 잠언에 보면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셨다.”고 했으니 하나님께서 주신 귀와 눈을 가진 우리가 듣고 본 것을 통해 사람을 판단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주관적이어서 누구나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러자 한 나이든 장로가 뻔한 것을 뭘 그렇게 오래 논의하느냐고 말하면서 첫째, 주일 성수할 것, 둘 째 십일조 정직하게 낼 것, 셋째 새벽기도 열심히 할 것, 이것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안수집사가 말했다. 이것은 다 행위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보시지 행위를 보시느냐고 말하며 그런 조항은 장로 후보자 선정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선정 기준 때문에 공천 위원회는 따로 토요일 오후를 잡아 저녁 식사를 하고 밤을 새워 토론했는데 아무런 결론을 얻지 못했다. 목사가 거들었다. 그 때까지 충분히 의견을 내고 논의 했으므로 어떤 후보자를 원하는지 모두가 잘 알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뒤 장로회 헌법에서 정한 장로의 자격을 추천의 원칙으로 하고 그때까지 논의한 것을 감안해서 후보자 선정을 하자고 제안했다. 모두 결론 없는 토론에 싫증도 났고 또 구체적인 사족을 다는 것보다는 그 원칙이 공동의회 앞에 공천위원회의 품위를 유지하는 데 오히려 낫겠다는 생각으로 그리 하기로 하였다. 

이 회의에 참석하고 온 김범인 집사는 권사로 있는 아내 박사라에게 이번 기회에 교회를 옮기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그건 안돼요.”라고 아내인 박 권사는 직각 반대하였다. “이곳이 겨우 우리 교회가 되었는데 안수 집사와 권사가 되어 다른 교회로 옮긴다는 것은 말이 안돼요. 그건 남의 교회 안예요?"

그러나 김범인 집사는 평소에 교회에 회의적인 사람이었다. 교회 옮기는 것이 대수냐? 교회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하면 옮겨야지, 이런 생각이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 안수 집사까지는 되었지만 그것 때문에 떠맡겨진 일도 많고 또 다른 교인들의 보는 눈도 있어 그것이 늘 부담스러웠다. 결혼 하면서부터 아내를 따라 교회를 나온 그는 교회의 모든 의식들이 생소하고 거부감이 들 때가 많았다. 교회에서 새 신자 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아 이십년 가깝게 교회 생활을 하면서 교회란 무엇인가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밖에서 보는 교회와 안에서 보는 교회는 시각차가 컸다. 교회란 거룩한 곳, 설교말씀 듣고 마음에 안식을 얻는 곳, 아픈 상처가 치유 되는 곳, 선한 사업을 하는 곳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왔는데 이런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졌다.

첫째 거룩한 곳이라는 생각이 말끔히 사라졌다. 세상보다도 시기와 질투가 많았으며 구역예배 등을 통해 남의 가정 사를 하나하나 알게 되어 말이 많았다. 또 신앙의 선배라고 권위를 세우며 자기 신앙기준에 따라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무시하고 자기가 받은 방언의 은사 등을 과시하기가 일쑤였다. 둘째 설교도 다 은혜롭고 마음에 안식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점점 신앙생활을 불안하게 하며 가치관에 많은 갈등을 야기했다. 김범인은  ‘교회란 삶에 보람을 찾고 지친 삶에 기쁨과 꿈을 주는 곳’이라는 꽤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설교는 들을수록 목을 옥죄는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자기가 하는 것은 모두 거듭나지 못한 세상 사람들이 하는 짓이라는 생각을 주입해서 마음의 평안보다는 죄의식이 자기를 눌러서 절망감을 가져왔다. 교회는 그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권위의 말씀을 통해 교인들을 양순한 양으로 세뇌공작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설교 말씀대로 따라 살려면 직장을 그만 두고 교회에 충성하며 교회에 와서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장사하는 사람이 있고, 연구원이 있고, 의사가 있고 방송인……이 있어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 문화생활을 하게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세속적인 일을 하는 무가치한 인간으로 내몰고 그들은 구원을 받으려면 꼭 교회의 스케줄에 맞추어 생활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었다. 목사는 이들이 교회에 매달려 살아야 하며 교회에 충성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충성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우상 숭배라고 타도한다. 그래서 김 집사는 일상의 생활이 교회에 다니게 되면서부터 리듬이 깨지고 계속 갈등으로 엉망이 되었다.

교회는 경건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요구하는 것이 많았다. 음주 흡연은 금물이며, 하루는 새벽기도로 거룩하게 시작해야 하며 교회의 집회에는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참석해야 하며 노방전도에 참여해야 하고, 직분 자는 단기선교에 참여해야 하며 교회의 프로그램을 적어도 하나는 맡아 충성해야 했다. 김 집사는 어쩌다 의사 동료들과 함께 술자리에 가면 술을 안 마시는데도 죄책감을 느껴야 했고, 응급환자로 교회를 빠지는 일이 있을 때도 불안하고 행복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아내가 그것을 용서하지 않고 못 견디는 것이었다. 다른 교인에게 본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부끄럽다는 것이었다. 개업의(開業醫)란 이만저만 바쁜 것이 아니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 까지, 그리고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손을 쉴 수가 없다. 그런데 수요일 밤에는 아내가 자기는 교회에 나가기 때문에 가능한 빨리 와서 학원에 간 딸을 데려오라고 한다. 토요일 오후는 성가 연습을 나가서 야식을 할 때가 많아 밤늦게 돌아온다. 결국 그들은 가정생활이라는 것이 없었다. 교회에서도 아내 박 권사는 맡은 직분이 많아 한 자리에서 함께 앉아 예배도 드릴 수 없었다. 따라서 귀가 시간도 같지 않았다.

“꼭 그렇게 바쁘게 일을 해야 하는 거야?”

그러면 아내는 말 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이 무엇인데”라고 하면서 “그러므로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한다. “우리는 주님의 나라를 확장하라는 명령을 받은 주의 군병이란 말이요. 충성스런 종이 되어야 해요.”

땅에 발을 딛고 하늘나라를 우러러보며 천국의 가치관대로 살아야 하는 기독교인은 괴로울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야 구원 받고 천당에 가는 거요?”

“구원은 별개지요. 예수를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으면 다 구원은 받은 것예요. 다만 구원 받은 사람이 고난을 이기고 그에 합당하게 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의무에요.”

“그런데 당신은 너무하는 것 아니요? 마치 당신은 혼자 도맡아 지상명령을 잘 수행하는 사람이요 다른 사람은 그러지 않은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다른 사람도 자기 나름대로 가정생활 충실히 하면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 있다고 생각해야 되는 것 아니요?”

“세상과 하나님은 함께 섬길 수 없어요. 세상에도 잘하고 하나님께도 잘하는 줄타기 신자는 참 신자가 아니란 말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신도가 800명이 넘는 이 교회에서 그럼 참 신자는 누굽니까? 당신 같은 광신자만 참 신자요?”

“구원의 약속은 받았지만 천국에서 상은 없겠지요.”

“엘리야가 호렙산 굴에 숨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선지자들을 다 죽이고 오직 자기만 남았다고 말했을 때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 바알에 무릎을 꿇지 아니한 자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고 했는데 그 칠천 명은 그때 어디 있었나요. 이름 없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을까요?”

김 집사는 평소의 불만을 아내에게 털어놓았다.


전도하는 사람과 선교사와 목사와 교회에 충성하는 사람만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예수를 믿고 예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살려고 하는 모든 신자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왜냐면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은 세상에서 자기가 다스리는 이런 백성이 확장되기를 기뻐하신다. 교회를 세우고 빈자리를 채워 놓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인가? 단기 선교로 찬양하고, 성극 보여주고 선물 공세를 하고 오면 천국 백성을 늘리고 오는 것인가? 오직 그들을 통해 예수님을 참으로 만난 몇 사람만 천국 백성이라고 불릴 수 있을 텐데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일까? 참으로 천국의 확장을 원한다면 그 나라의 문화에 동화해서 그곳에서 살며 그곳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람의 본을 보여서 함께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때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교회에서는 모두 자기만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기기만에 빠져 있다.

“당신이 그렇게 본을 보이면 되지 않아요?”

“먼저 장로가 되지 않는 것이 내게는 본을 보이는 것이요.”

“당신은 교회 개혁에는 당당하게 맞서지 못하고 교회를 떠나자고 하고 있지 않아요? 난 당신의 본심을 아는데 첫째 공천되지 못해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운 것이지요? 그리고 비록 공천이 되었다 하더라도 낙선될까봐 또 두려운 것 아니에요? 그래서 다른 교회로 떠나자고 하는 것 아니냐구요?”

“아니요. 다른 모든 것은 두렵지 않아요. 나는 장로가 될까봐 걱정하는 거예요. 장로가 되면 교회의 꼭두각시가 되는 거요. 정말 하기 싫은 비본질적인 일을 믿음의 본질처럼 남에게 과시하고 다녀야 한다구요.”


김범인 집사는 자기가 아직도 기독교 문화에 익숙하지 못해 헤매고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모두 장로가 못되어 안달인데 왜 자기만 장로가 될까봐 미리 걱정하고 노이로제에 걸려 있는가? 누가 자기를 장로 만들어 준다고 확약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왜 장로 선거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리고 잠이 안 오는가? 이 증상은 안수집사가 되었을 때도 있었다. 그가 안수 집사가 된 것은 권사인 아내 때문이었다. 십일조나 기타 각종 헌금, 선교후원금 등은 아내에게 맡겨놓고 싸우지 않기로 되어 있었다. 그는 교회에 출석하되 병원 일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 무엇이나 협조할 생각이었다. 자기 몸으로 뛸 수 없는 대신 물질적인 후원은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병원 시간을 빼고 나가는 활동은 병적으로 싫어하였다. 비록 저녁 늦은 시간이라도 몸이 피곤하면 다음날을 위해 집에서 쉬는 편이었다. 이런 원칙 하에서 물질적인 것은 아내에게 맞기고 그 동안 자기주장대로 편안하게 교회 생활을 해 왔다. 그런데 그가 안수 집시가 된 것이다. 그것은 순전히 자기가 교회에 낸 돈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안수집사가 된 후로 책임질 일이 많아졌다. 남선교회 회장도 해야 하고, 주일학교 부장도 해야 하며, 안수 집사 모임, 안수집사 기도회도 참석해야 하고 헌금위원도 해어야 했다. 이것은 김 집사에게는 엄청난 일이고 변화였다. 무엇에나 책임감이 강하고 철저했던 그는 맡겨진 일을 소홀히 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병원 일과 이 모든 일은 감당하기는 너무 어려웠던 것이다. 주일학교 부장을 하려면 먼저 교사들에게 그가 본이 되어야 했다. 본이 된다는 것은 새벽기도도 나가고 교사 수련회도 참석하고, 주일학교 학생 배가를 위해 교회 주변의 축호 방문도 해야 하고, 또 교사가 요청하면 교회에 잘 빠지는 학생의 집을 그들과 함께 방문해서 무슨 권고의 말을 하고 기도를 해야 했는데 이것은 김 집사가 결코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주일은 좀 집에서 쉬어야 하는데 이런 일들은 그를 파김치가 되게 하는 일이었다. 그때까지 김 집사는 병자를 고치는 일을 자기 본업으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본업에 충실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세상 일이 절대 본업이 될 수 없다고 윽박지른다.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설 때 살아 있는 동안 무슨 일을 하고 있다가 왔느냐고 물으면 하나님의 일을 제쳐 놓고 세상일을 하고 왔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김 집사를 괴롭혔다. 그가 기쁘게 하고 싶은 일은 병자를 돌보는 일이다. 그것은 피곤한 줄을 모른다. 그러나 집사로서 하는 일은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하는 일이었다.


드디어 공천 된 장로를 발표하는 주일이 다가왔다. 그는 너무 가슴이 떨려서 장로 후보자를 최종 추천하는 공천 위원회도 참석하지 않았고 그날 주일에 교회도 나가지 않았다. 

저녁 때 혼자서 교회에 다녀온 아내 박 권사가 말했다.

“전, 교회에서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했어요. 장로 후보자 공천에 당신 이름이 올랐는데 정작 본인은 교회 출석도 않으니 이게 뭐예요. 자기 이름이 안 올랐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많은데 당신은 감사할 줄도 모르니 한심스러워요. 이건 당신을 존경하는 사람들을 배신하는 행위예요.”

“실망하면 다음엔 부표를 던지겠지요. 하나님의 저울로 달아보면 나는 기준에 미치기는 어림없는 사람입니다.”

“교회도 연조가 쌓이면 집사, 안수집사, 장로……이렇게 올라가야지 제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교회 마당만 밟고 다니는 교인처럼 우습잖아요?”

“권사님이 왜 그러실까? 장로는 계급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은사를 따라 주신 직분이 아니요? 은사는 주님의 몸을 섬기기 위해 모든 사람에게 주는 것이기 때문에 장로가 된다고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장로는 기업체에서 최고경영자 같은 그런 자리가 아니요? 교회를 다스리거나 대외적인 조직에 참여하려면 적어도 그런 명함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 안 되세요?”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교회에서 <선교위원장 장로 XXX>, <세계 XXX 선교회 회장 장로 XXX>, <전국 남선교회 총무 장로 XXX>,……이런 거 말이요?”

“그것도 하나님의 일을 크게 하는 거죠.”

“아무튼 나는 장로가 싫습니다. 조직, 법, 제도에 얽매어 있으면 나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아요.”

“그건 당신의 열등 콤플렉스에서 오는 것 아니요?”


일주일이 지나서 이제 장로 투표하는 주일이 왔다. 이 집사는 이날도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주일성수를 안 한 것이다. 아무리 자기에게 이롭게 해석해도 기독교인으로서 이것은 십계명을 어긴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징계를 받을만한 일이었다. 이범인 집사도 마음 한편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가족이 다 교회에 갔는데 자기만 혼자 남아서 골프를 치러 간 것도 아닌데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니 괴로웠다. 그는 성경을 펴 놓고 앉아 있었다. 목사가 설교를 하는 시간에 그는 성경을 펴서 에스겔서를 읽었다. 47장에 이르러 하나님의 성전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환상을 에스겔이 보는 내용을 읽게 되었다. 성전 동쪽의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온 물이 동쪽으로 흐르다가 남쪽을 향해 사해 쪽으로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에스겔을 인도한 천사가 천척을 측량한 후에 그에게 건너게 하니 물이 발목에 이르고 이와 같이 천척마다 건너게 하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허리에 오르고 그리고 드디어는 건너지 못할 강이 된 것을 묘사한 내용이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생명수의 강이 사해까지 흘러 들어가며 그 물로 바닷물이 되살아나며 이 물이 흐르는 각처에 만물이 살아나는 것을 묘사하고 있었다. 김 집사는 분명 하나님께로 비롯된 축복의 생수가 자기 마음속 깊숙이에도 차고 넘쳐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하나님을 모르던 이전 상태의 자기가 점차 넘치는 성령으로 지금은 가득 차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감격이었다. 그러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 때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 들었다.

“범인아, 네가 나의 일을 하고 싶으냐?”

“그렇습니다, 주님. 그러나 병원에 매어 있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괴롭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나의 일은 곧 나를 믿는 것이다.”

이번에 김범인은 그 말이 무슨 말이냐고 따져 묻지 않았다. 그가 요한복음 6장을 읽으면서 예수를 찾아 가버나움까지 간 무리들이 그들이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무슨 말입니까?”를 몇 번 되뇌어 물었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모든 것이 투명하게 느껴지게 된 것이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마구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하나님께서 자가를 위로해 주신 말씀 때문이었다. 교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홀로 있는 괴로움과 병원 일을 소홀히 하지 못해 교회 일에 성실하지 못한 갈등에 대한 주님의 위로 때문이 흘린 눈물이었다. 왜 주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홀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는지 자기가 어리석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를 믿어라. 나에게 너를 맡겨라. 내가 너를 인도하겠다.”

라는 말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새벽기도에 나가라고 하면 “예‘하고 나가면 된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다고 영력을 주실 것이다. 잠 못 자서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주께서 판단하셔서 “오늘은 쉬어야겠다.”라고 하시면 죄책감 없이 쉬면된다. “네가 환자 돌보는 것을 그토록 좋아하는 것은 내가 그런 은사를 너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병원 일에 충성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라고 하면 기쁘게 할 것이다. “제가 교회에서 맡은 일을 감당할 은사도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면 주께서 그분의 뜻을 따라 또 그런 은사도 주실 것이다. 그분을 믿기만 하면 된다. 왜 온전히 나를 맡기고 주를 믿지 못했는가?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 걸어가리.


어린아이 같은 우리 미련하고 약하나

주의 손에 이끌리어 생명 길로 가겠네. ……


마구 찬송이 쏟아져 나왔다. 김 집사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교회에 대한 열성분자들이 저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강권하심으로 사랑의 수고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새로운 눈이 띄어서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늦게 돌아온 아내가 말했다.

“당신 오늘 교회에 안 나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요?”

“무슨 일이 있었는데?”

“장로 피택에서 부끄럽게 당신은 낙선한 것이요. 그래 원대로 낙선하니 기뻐요?”

“여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있어요.”

“뭔데?”

“이제부터는 내가 주님 말씀을 순종하고 잘 살기로 했어요.”

“그래요? 그럼 지금부터는 성수주일 잘하고, 새벽기도도 잘 나가겠네요. 교회도 안 떠나고, 내 말도 잘 듣고……”

“아니 당신 말을 잘 듣는 게 아니라. 주님의…… ”

“됐어요. 완전히 거듭나셨네요. 이제 나도 신앙생활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네요.  그렇게 되게 해 달라고 얼마니 기도 했는데 하나님께서 이제야 들어 주셨네요.  이제부터는 애들 좀 맡아 주세요. 나 교회 활동 좀 제대로 하게.”

그러면서 박사라 권사는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출처 : 달팽이
글쓴이 : 은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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